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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공지사항 2018-05-12T16:02:35+00:00

기억에 남는 환자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3-14 08:21
조회
4889

내가 이러한 치료를 시작한 것이 1989년이다.
그러니 햇수로 27년 째 된다.
그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해왔다.
그 많은 환자중에도 특별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환자들이 있다.
아마 제일 특별한 환자는 오규철씨일 것이다.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는 1년안에 치료를 마무리 할 예정이었다.
교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정으로 하지를 못하고 내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스프린트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환자는 지금도 상당히 만족하고 고마워 하지만 나는 처음에 교정으로 치료를 하지 않았던 것이 상당히 아쉽다.
그런데 아들 둘을 2-3년 동안 교정으로 치료를 잘 끝냈는데 엉뚱하게도 아버지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치료를 하고 있다.
나는 1년 정도 치료를 하고 마무리를 하자고 했으나 환자가 원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아직도 끝내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지금은 앞니와 어금니 합쳐서 10개 이상의 치아가 풍치로 인하여 빠져버렸다.
환자는 치아가 모두 빠졌을 텐데 그래도 선생님의 치료로 이 정도의 치아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마와하고 있으니 내가 할 말이 없다.
지금 나이가 58세 이지만 20대 초반의 몸 같다고 하니 치료를 하는 나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지금 20대 후반인 키 185cm, 몸무게 100kg의 아들과 팔씨름을 하면 아버지가 이긴다고 한다. 옛날에 박종팔 선수 등과 권투를 하였는데, 지금 권투를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환자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치료를 받는 동안 거의 죽음의 수준까지 수 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도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치료 중간에 조금만 몸이 불편해도 “치료를 그만두겠다.” “환불을 해달라”라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오규철 환자는 “선생님의 치료 위해서라면,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에게 여러 번 한 유일한 환자다.
지금은 키 185cm에 몸무게100kg 인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제일 존경하는 사람에
”황영구박사“를 썼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몇 번의 주의를 받고 이순신 장군으로 바꾼 에피소드도 있다.
아들 둘 모두 치과기공과를 나와서 큰 아들은 LG에 다니다가 큰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한다고 오규철씨는 좋아하였다.
둘째 아들은 계속 치과기공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두 아들이 모두 치과 기공과를 가는데도 나에게 한 번도 진로를 상의 하지않아서 나중에서야 내가 알았다.
이 환자는 본래도 뻐드릉니였지만 젊었을 때 일을 하다가 유리에 왼쪽의 엄지손가락안쪽의
인대가 끊어진 뒤 왼쪽 몸 전체가 상당히 약해졌다고 한다.
정형외과에서도 인대가 끊어진 것을 포기했는데 지금은
왼쪽의 몸이 거의 오른쪽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신의 건강이 상당히 좋아져서 항상 나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반대로 춘천에서 온 30대 남자는 만성피로가 너무 심해서 자동차 뒷트렁크에
제일 독한 농약 2병을 항상 싣고 다닌다고 하였다.
그런데 장치를 기운 즉시 만성피로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왜 연예인들 같은 팬클럽이 없으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우리 치과에 오기 오래전에 아래 앞니 4개를 신경치료를 받았었다.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는 치과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몸이 피곤하거나 하면 치아뿌리쪽의 잇몸에서 약간 누런 액체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환자도 이런 증상이 있다 해서 나오라 해서 보니 이런 것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보냈는데
춘천의 치과에 가보니 “의사가 약도 주지 않았다면서 무성의하다.”고 하니
환자의 태도가 돌변을 해서 치료를 그만 두었다.
나는 항생제 처방을 상당히 조심하는 사람이다.
발치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생제를 거의 처방하지 않는다.
의사입장에서 보면 간단하게 몇 자를 적어서 처방을 하면 처방료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환자의 건강을 생각해서 항생제 처방은 가능한이면 하지 않는다.
항생제 처방이 너무 남발되다보니 요사이는 국가에서 개업의들의 항생제 처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해서 항생제 처방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항생제 처방을 남발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의사들이 처방을 해주면 환자들의 건강이야 어떻게 되든, 의사, 약사. 제약회사 모두 돈을 벌 수 있으니 누나 좋고 매부 좋은 모양이 된다.
더 문제는 우리나라 환자들이 약과 주사와 입원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이 약처방을 안해주면 성의 없는 의사로 보는 환자가 더 문제다.

또 심한 두통이 있으면서도 나의 실력을 테스트 하기 위해서 일부러 두통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 장치를 끼운 12시간만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6.5 에서 9.9 로 올라간 우리 수석 위생사 권태정, 자기는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도 나의 지시(?)로 치료를 받고 건강이 더 좋아져 좋아하는 우리 위생사 방은경,“좋아 질 수 있습니다.”라는 나의 말에 눈물을 주르르 흘린 전주 아주머니, 냄새를 맡지못하다가 치료후 수산시장의 비린내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던 환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청신경 죽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치료 후 소리가 들려서 좋아하던 할머니, 안압이 높은 녹내장으로 실명직전에서 장치를 끼우고 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환자,상당히 심각한 천식이 정상으로 된 어린이, 수년간 항생제를 먹어도 누런 코가 줄줄 나오던 것이 장치를 끼우자 바로 좋아진 아주머니, 대변이 줄줄나오고 팔이 올라가지않아서 화장도 못하던 것이 좋아진 아주머니, 충치치료를 하다가 옆의 치아를 조금 갈아낸뒤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 좋아진 환자, 어금니 한 개를 뽑은 뒤에 20여년을 거의 폐인으로 지낸 환자, 심한 기면증(수시로 잠을 자는 증상)으로 수능날 아침에 보니 구석에서 잠을 자던 환자가 치료후 약을 끊고서도 8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한 일, 딸의 키가 잘 커서 흥분하던 학생의 어머니, 5살 짜리 딸의 치료를 “입천장이 조금 깊어요”라는 나의 말 한마디에 두 말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치료를 시작한 목포 아주머니, 월 2부 이자를 빌려서 치료를 받은 봉천동 아주머니, 수 십 년을 두통으로 고생을 하다가 좋아진 할아버지, 어지럼증으로 아무것도 못하다가 장치를 끼우고 오전7시부터 저녁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아버지가 의사인 학생, 조울증으로 조증에 들어가면 환자자신이 신같이 느껴졌다가 좋아진 환자,
등등 수많은 환자들이 생각이 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명의”와 “돌팔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좋은 쪽으로 보는 환자가 훨씬 많으니 27년간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치과의사는 “70%의 환자들이 효과를 보아도 나머지 30% 환자의 시달림 때문에 턱관절 치료를 하지않는다”라면서 나에게 환자를 보내왔다.
나는 27년 동안 나에게 치료를 받고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가 그렇게 많이 기억이 나지않는다.
나의 이 말도 믿고 싶은 사람만 믿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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