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증명과 수학적 증명의 차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9 18:39
조회
9036
나는 최근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란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사이먼 싱이란 사람이 쓴 것으로 내용은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인 엔드루 와일즈(Andrew Wiles)가 수학계의 오랜 숙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 대한 글이지만 일반인들이 “수학이라는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을 이해하는데도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우리시대 젊은이들에게 단 한 권의 수학책을 추천한다면
이 책을 권하겠다면서 “이 책은 항상 손이 닿은 곳에 꽂아두고 싶다. 이 책은 나의 열정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죽비(竹扉)같은 책이다“라고 하였다.
이 책에는 과학적 증명과 수학적 증명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서 과학적 증명은 수학적 증명만큼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적 증명과 수학적 증명의 차이에 대한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과학이론은 수학적 증명과 같은 엄밀한 검증과정을 거칠 수가 없다. 과학이론의 생명은 전적으로 그것을 입증해주는 “증거자료”에 의해 좌우된다.
과학적 증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행위는 “관측”과 “지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것들은 수학적 논리에 비해 신뢰도가 많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껏해야 “대략적인 진실”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 대하여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모든 종류의 ‘정확한’ 과학이론들은 예외없이 ‘근사적인 개념’에서 출발을 한 것이다.”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다는 과학적인 증명조차도 한쪽 구석에는 의심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미심쩍은 부분들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증명이 완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끔은 이러한 조그만 의심이 증폭되어서 과학이론자체를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대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학적증명의 이러한 취약점 때문에 과학은 어쩔 수 없이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전까지 옳다고 믿었던 이론들”이 “금세 다른 이론으로 대치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의 이론과 완전히 상반되는 별종일 수도 있다.
또 공상과학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한 저명한 과학자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을 제아무리 힘주어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바로 다음날 번복될 수 있다.’
과학적 증명은 ‘변덕스럽고 엉성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수학적인 증명은 절대적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타고라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리가 사실임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진리로 남을 것이다.“
수학은 과학이 엄밀한 진리의 기초위에 출발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과학은 수학이 제공한 그 튼튼한 기초위에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실험결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간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가들의 이야기가 과학적 증명이라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 증명보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의학적인 치료이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 세균(박테리아)에 의해서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을 (바이러스는 예외로 치자)”불과 168년 전에만 해도 몰랐다.
그래서 헝가리 의사인 이그나즈 필리프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가
1847년 내과의사와 외과의사에게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손을 씻자고 처음 제안 했을 때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의료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지만 제멜바이스가 산욕열(혹은 산후열)에 대한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산욕열은 출산한 산모에게 거의 치명적인 병이었다. 빈(Wien)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제멜바이스는 우연히 자연 실험을 하게 되었다.
당시 병원에는 분만실이 두 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의사들과 의과대학생들이 배치된 부유한 계급을 위한 분만실이었고, 또 다른 한 곳은 산파들이 배치된 노동자계급을 위한 분만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노동자 계급을 위한 분만실에서 훨씬 낮았다.
두 분만실을 조사한 끝에 제멜바이스는 의사들과 의과대학생들이 아기를 받기 전후에 시체를 연구하기 위해서 분만실과 시체실을 부지런히 오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체의 세균들이 산모에게 옮겨지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조사를 통해서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에게 손을 씻어라고 대담하게 제안했다.
즉 의사들에게 시체를 해부를 하고 난 뒤에 아기를 받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요구를 한 것 때문에 의료계에서 조롱을 받았고, 병원에서도 쫓겨나 직업을 잃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1000년이나 2000년 전이 아니다. 불과 168년 전이다.
오늘날 나는 치아를 0.1mm, 1도를 움직이는 것은 심신의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실지로 나는 이러한 아주 미미한 치아의 움직임을 통해서 심신의 건강이 놀라운 정도로 좋아지는 것을 매일 나의 환자들에게서 보고 있다.
이러한 나의 주장은 27년 동안의 공부와 연구, 또 수 천 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터득한 것이다.
그런데도 치과의사, 의사, 한의사, 일반인들의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응은
1847년 제멜바이스가 의사들에게 “환자를 보기 전에 손을 씻자”라는 주장에 보였던 반응과 너무나 비슷하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사기꾼이다.”라는 등등
그러나 제멜바이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듯이
나의 주장을 의사와 환자들이 받아들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면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다”라는 의사들의 진단 때문에
수많은 병원과 여러 과를 돌아다니면서 건강과 시간과 돈을 잃고 있는 “억울한 환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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